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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것’, 백무산의 시

백무산, <운주사>, <<길은 광야의 것이다>>(창작과 비평사, 1999)

운주사에 가서 보아라
누가 이런 절을 지었나
모른다 한다 누가 천불천탑
왜 만들었나 모른다 한다
몸은 네 몸일지 몰라도
남의 주장 잔뜩 지고
無量劫(무량겁)을 다녀도 모른다 한다

가서 보아라 그 곳에 내 얼굴 네 얼굴
찾아보아라 그 가운데 하나는 내 얼굴이다
천불이면 뭇사람 얼굴 다 담고
천탑이면 모든 마음 정성 다 세우리
가서 비춰보면 그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내 얼굴이고
가서 올려다보면 그 가운데 하나는
내 마음을 닮았으리라
비춰보니 내가 곧 부처라 하고
우러르니 내가 곧 하늘이라 한다
운주사에 불상도 이제 불탑도 몇 없다 한다
버려지고 볼 것 없다 한다
그러나 운주사에 가 보아라
그 곳에 내 얼굴 네 얼굴
없더라도 실망 말아라
부처라 해도 틀린 말
하늘이라 해도 틀린 말
나 아닌 것 다 벗고 가면
빈 운주사를 보리라

격정

내가 유일하게 열광했던 스타는
육상선수 그리피스 조이너

그녀가 경기장 트랙을 달릴 때
티브이 앞에서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종마처럼 긴 다리와 잘록한 무릎과 발목
피스톤을 장착한 엉덩이의 근육들이
일시에 수십 기통의 격정을 점화시키며

긴 머리채를 저공 비행의 프로펠러처럼
바람에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던 흑인 여자

슬픈 나이 서른 여덟에 그녀가 죽었단다
내게는 그녀가 출발선에서 태어나
꼭 백 미터의 격정을 살고 간 것 같다
문득, 내 인생이 몇 걸음이던가

사랑의 격정은 삶을 정화하고
자유는 거침없는 곳에서 오고
인생은 광야처럼 비어 있다
***

우리 아파트 근처에는, 1톤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철따라 업종을 바꾸어 장사하는 부부가 있다. 이 트럭 위에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잉어빵이 올라갔는데, 그 앞에는 이런 광고 아닌 광고가 나붙었다.

‘잉어빵에도 잉어는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은 ‘붕어빵에 붕어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흉내낸 말일 것이다. 이 말 의 뜻은, 붕어빵이든 잉어빵이든 그 안에는 붕어도 잉어도 없다는 의미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붕어빵 트럭을 보고 ‘거기에 붕어가 들어있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그런 광고를 붙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붕어빵 트럭을 지나가다가 ‘붕어가 들어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어린아이거나 술 취한 사람이라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만 되도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생도 워낙 그 생활이 바쁘고 붕어빵 먹기 바쁘기 때문이고, 술 취한 사람도 술 깨고 난 다음에는 ‘붕어빵’ 만들기에 바빠서 그런 물음을 던질 겨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부류를 제외하면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기는커녕 붕어빵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붕어빵을 먹으면서 ‘붕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니!

우리 인생에는 무엇을 담겨져 있을까? 이 물음에 ‘인생’이라는 답하는 ‘어린아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론 술김에 ‘인생’이라는 답할 때도 있는데, 술이 깨고 나면 그 ‘인생’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빨리 부정되고 만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물어보자. 과연 우리 인생에 우리 인생이 담겨져 있는가? 혹시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우리 인생에 우리 인생이 없는 것은 아닐까? 또는 그것을 묻지도, 의심을 가지지도 않고 ‘붕어빵’ 만들기에 급급해하지는 않을까? 또는 더 나쁘게도 우리 인생에 ‘남의 주장’, ‘나 아닌 것’을 가득 넣어 다니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남의 주장’, ‘나 아닌 것’을 거부하는 것을 우리는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는 거침없는 곳에서 오고 인생은 광야처럼 비어 있다.” 이를테면, 바람에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던 조이너도,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세운 사람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의 70년대, 80년대, 아니 60년대, 아니 우리의 ‘광야’ 속에 넘실거리던, 그 모든 격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안치환의 <노스탤지아>라는 앨범에 들어 있는 <부서지지 않으리>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http://www.unju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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