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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   조회수 : 175
작성자 : 노회찬    등록일 : 2004.09.01    이메일 : 없음  

8월 31일 (화) 맑음

하루 종일 광릉 숲에서 지내다.
광릉 숲 관통도로변의 150년 된 전나무 앞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광릉 숲 회생기원을 위한 위령제>

앞으로 150년은 더 살수 있었던 전나무 열 한그루는 인간이 내뿜은 자동차 매연으로 인해 자기 수명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하였다.

인간의 무모한 욕망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짧은 생각으로 숨져간 나무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끝난 후 이들을 베는 행사가 이어졌다.
광릉수목원 원장과 직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주요시설과 숲을 둘러보았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로 유명한 이유미 박사가 동행하면서 530년 된 광릉 숲 곳곳을 안내하고 설명해주었다.
지난 5월 이유미 박사의 책을 선물해 준 김지선님에게는 고마움을 전할 길이 없다.

극상림을 이룬 서어나무를 처음 보았고 층층나무와 가래나무를 배웠다.
이유미 박사가 토종 물봉선화를 가리키며 이름을 외우라고 한다.
흔히 손톱 물들이는 데 쓰는 <울 밑에 선 봉선화>는 겨우 백 년 전에 들어 온 외래종이라고 말해 준다.
나물의 제왕 곰취가 놀랍게도 아름다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도 가리켜 준다.
산초나무를 가리키며 추어탕 먹을 때 넣는 산초는 산초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초피나무 열매란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금강초롱의 학명이 일본인 이름으로 된 사실을 들며 식물이름도 <국력>이 반영된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름을 아는 식물은 더 아끼고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식물 이름을 알게 하는 것이 곧 자연보호의 지름길일 수 있다는 이유미 박사의 지론이다.
영어단어 2000개를 아는 것보다 나무, 풀 이름 200개를 알고 있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김형광 수목원장과 이유미 박사는 가을에 다시 한번 오라고 한다.
가는 길에 들르라는 봉선사 철안스님의 당부는 지키지 못했다.

아쉬움을 묻어두고 식물의 세계를 떠나 동물의 세계로 돌아왔다.
차가 수목원 정문을 지나 서울로 향하자 권우석 보좌관이 5시 뉴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를 끄도록 했다.
숲향기 휘튼치드가 아직 콧잔등에 남아 있는데 <동물의 뉴스>는 나중에 들어도 된다.

생일이라고 여러 사람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한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고 철이 든 후 생일을 기념한 적이 없다.
아직 뒤를 돌아보기엔 이른 나이이고, 존재를 기념할 만큼 해 놓은 일도 없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날이고 반성을 해야 할 날이다.

그런데도 임영진님은 꽃바구니를 보내주었다.
숲속의 향기, 안개꽃, 노아정 식구들, 비틀즈, 공숙영님 등 많은 분들의 축하에 부끄러움만 더 해 간다.

숲은 미래다.
숲은 관념이 아니라 과학이다.
숲이 병들면 미래가 병드는 것이다.

숲에서 지낸 7시간.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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